윌슨의
잠언 5
눈물로
드리는"기도"
월터 L.
윌슨 지음 / 김인순
옮김
화학자들은
눈물이
염화나트륨과
석회인산과
점액과 물이
화합하면서
생기는 것이라고
말하겠죠. 그
반면에
설교자들은
눈물이야말로
상한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피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경찰들은
눈물을
나약하다는
증거라고 말할
것입니다.
성경에는
눈물에 대한 많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육신으로 오셔서
육신 중에 한
본질적 요소인 "눈물과
피" 두 가지를 이
땅에 남겨두고
떠나셨습니다.
주님께서 흘리신
눈물이 내보이는
것은 우리의
연약한 감정을
쓰다듬어
주셨으며 우리의
슬픔과 고통을
대신 짊어지는
것을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분의
흘리신 피는
우리를 불법과
죄악에서 깨끗케
하시려는 그분의
열망에 대한
증거입니다.
겟세마네에서
주님께서는 큰
고뇌 속에서
눈물로
기도하셨습니다.
왕비의
눈물은 에스더 8:3에
나옵니다
현명한
유대 여인
에스더는 자기
백성을 구하기
위해 왕께 나아가
간청을
드렸습니다.
그녀가 드린
기도는 효력을
발하여 왕의
마음을 움직였고,
그녀의 청원이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녀는 자기
동족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무릅쓰고
간청했던
것이지요. 그 때
왕비가 흘렸던
눈물은 그녀의
진지함과 헌신,
마음의 결심을
보여 주는
것이었습니다.
농부의
눈물은 시편 126:5,6에
있습니다
소금물이
씨를 자라게 하는
것 같습니다. 씨를
뿌리는 자는 왜
눈물로 뿌려야
할까요? 도대체
토양을 갈아엎고
무슨 씨를
뿌리길래 눈물을
흘리면서 한다는
것일까요? 시편의
이 구절은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옥수수나
밀이나 보리가
아니라 복음의
씨를 뿌리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눈물은
예수 그리스도
없이 사는 삶의
비극 때문에
나옵니다.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이
끝날 때
죄인들에게는
기나긴 고통이
시작됩니다.
눈물은 아직도
마음에 좋은 씨(복음)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 앞에 놓인
위험 때문에
나옵니다.
무엇보다 눈물은
우리의 믿음을
보여 줍니다.
눈물이야말로
우리가 복음을
들고 나아가기를
사모한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주님
때문에 우리는
잃어버린 사람을
위해 슬퍼할 수가
있는 것이지요.
아버지의
눈물은 마가복음 9:24에
나옵니다
여기에
나오는 장면은
얼마나 슬픈지
아십니까? 이러한
일이 아직도 많은
가정에 있습니다.
마가복음 9:24에서는
마귀들린 아들을
위해 기도하는
아버지가
나옵니다. 악한
영이 자기 아들을
괴롭히는 것을
보는 것이
아버지에게는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 모릅니다.
아버지의 마음은
고통 가운데 있는
아들을 동정하고
있습니다. 마귀는
정말로
잔인합니다.
마귀는 생명을
파괴하고 파멸된
것을 비웃기
때문입니다. 또
마귀는 영혼을
멸망시키고
멸망한 것을 보며
기뻐합니다.
마귀는 마음을
상하게 하고 상한
마음에 불을
붙입니다. 마귀의
수중에는 어떤
은혜도 없으며
사탄의 계략
안에는 어떠한
자비도 없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기도하는
아버지가
예수님께 와서
눈물로 『주여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음을
도와주소서.』라고
간청합니다. 이런
눈물이야말로
주님 앞에 정말
귀한 것입니다.
이런
눈물이야말로
진짜 믿는 마음,
솔직하고 진실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이죠. 또 이런
눈물이야말로
하나님의 능력을
가져옵니다.
아버지들이여,
당신의 자녀들을
주님께로 데리고
오십시오.
주님께서는
당신의 눈물을
보실 것이며,
당신의 부르짖는
기도에 응답하실
것입니다.
죄인의
눈물은 누가복음 7:38에
나오는데 그
내용이 우리를
감동시킵니다
여기에는
죄인인 한 여인이
예수님 발 앞에
무릎 꿇고 있는
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녀는
눈물로 주님의
발을 씻겨서
그녀의
머리카락으로
닦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카퍼나움
거리에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그러면 내가
너희에게 쉼을
주리라.』(마 11:28)고
큰 소리로 잊지
못할 말씀을
하시는 동안에도
여전히 그녀는
카퍼나움 거리
암흑 속에서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녀가
지금껏 만났던
모든 남자들은
그녀를
약탈하려고
했습니다. 그들은
아마 그녀가
가졌던 모든 것과
그녀의
정조마저도
빼앗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그녀에게 근심과
고통을 쌓이게
했습니다. 여기에
그녀의 근심 쌓인
마음에 안식을
주실 수 있는 한
분이 계셨던
것이지요. 그녀는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녀의
마음과 사랑을
드리고 싶은 분의
발 앞에서 그것을
깨뜨렸습니다.
주님은 그녀의
눈물을
보셨습니다.
그녀의 눈물은
그녀가 진정으로
회개함을 보여
주는 것이랍니다.
그 눈물은 주님의
용서와 화평으로
말미암은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정말로
주님만이 주실 수
있는 것을 위해
그분께 나아온
적이 있나요? 오늘
무릎을 꿇고
그분의 자비를
간곡히 구하세요.
왕의 눈물(왕하
20:5)
왕이
죽음의 면전에서
침상에 누워
눈물을 흘릴 때는,
우리로 하여금
비록 그가
왕일지라도
연민을 느끼게
합니다. 왕과
왕비도 눈물을
가졌으며, 정치가,
은행원, 장관,
대통령도 눈물이
있습니다. 부자,
행선자, 저명인사,
이들 모두 눈물이
있습니다. 고통은
누구에게나 다
있으니까요.
사람들이 별의별
방법을 다 쓴다
해도 마음에
고통이 못
들어오게 막을
수는 없지요.
히스키야 왕의
눈물은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켜서 그의
생명은 15년간 더
살도록 연장시켜
주셨습니다.
눈물로 드리는
기도는 거의
응답받습니다.
눈물 없이
기도하는 사람은
대개 냉랭한 마음
때문입니다.
냉랭한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은혜로
피는 꽃을 피울
수가 없지요. 자,
주님께 따뜻한
마음을 달라고
기도합시다.
눈물로
기도한 한나(삼상 1:10)
이스라엘의
큰 필요를 알고
백성들을
하나님께로 이끌
수 있는 아들을
주십사 하고
기도하는 한
여인이 있었지요.
그녀는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여인이었습니다.
비록 아이는 못
가질지언정
그녀의 마음은
하나님께 향한
기대감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녀는
이스라엘 백성의
필요를 보았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그녀를 통해
선지자가 나올 수
있도록 자신을
도구로 사용해
주시길 갈망했던
것이지요. 다시
주님은 귀한
눈물을
보셨습니다.
한나의 기도하는
마음을 보시고
주님은 그녀의
소원을
들어주셨습니다.
우리도 동일하게
눈물로 필요한
것을 아뢰면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능력 있는
설교자는 눈물이
있습니다(행 20:19)
말씀
전파와 실천에
있어서 대단히
위대한 사도
바울은 온유한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는
밤낮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위해 눈물을
흘렸습니다.
바울의 설교는
냉랭한 설교가
아니라 눈물에
젖어 있는
설교였습니다.
바울의 설교는
차가운 설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뜨거운
마음에서 나오는
뜨거운 눈물로
에베소 사람들을
향해 깊은 사랑을
선포했던
것입니다. 바울은
사랑했기에
울었습니다. 이
새로운
회심자들은 그의
혼의
짐이었습니다.
바울의
전도여행은 3년이
걸렸습니다(행 20:31).
이 기간 동안 언제
그가 모금을
했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눈물로
한 것만은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모든 설교자들의
본이었던
것이지요.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온유한
마음과 눈물, 젖은
눈과 우리가
섬겨야 될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을
주실 수가
있습니다.BB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