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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은 구원을 받으셨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의 지식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딤전 2:4)                                                                                                                  구원을 받은 기억이나 확신이 없는 분은 이 글을 누르십시오.                                                                                                                        더 늦기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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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왜 비누로 씻어야 하는가?
26. 매달린 것들 중에 가장 큰 것
25. 연필 이야기
24. 놀라운 자연의 섭리
23. 목욕이 의미하는 것
22. 주택 건축의 교훈
21. 민들레
20. 우리들은 항상 감사해야 합니다
19. 전보와 전신주
18. 꼬리들에 관한 이야기
17. 가장 좋은 옷
16. 보석과 나비
15. 낡은 신발
14. 부르신 목적에 합당한 만년필
13. 촛 불
12. 굽은 땅콩
11. 이발과 침상
10. 개는 여전히 개일 뿐
9. 고결한 나귀
8. 잎사귀
7. 파리떼가 모두 사라졌어요
6. 말의 안장이 주는 교훈
5. 눈물로 드리는 기도
4. 자동차를 통해 배운다
3. 암탉과 달걀
2. 콩  이야기
1. 개미들 피크닉 가다
 

 

 


 

윌슨의 잠언   

윌슨의 잠언 3

암탉과 달걀

월터 L. 윌슨 지음 / 조미정 옮김

수많은 자연의 신비 중에서도 달걀의 신비야말로 으뜸가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상의 지혜가 아무리 뛰어난들, 알이 부화하는 그 신비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갖가지 알들이 부화하는 날수는 7의 배수로 늘어난답니다. 감자투구벌레 알은 7일 만에 부화하고요, 카나리아 알은 14일 만에, 달걀은 21일 만에 부화합니다. 그뿐인가요, 오리 알은 부화하는 데 28일 걸리고, 청둥오리 알은 35일, 앵무새 알은 42일이 걸린답니다.

혹, 자연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이 우연하게 일어났다고 생각하십니까? 생명체라는 생명체는 모두 다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법칙에 따라 움직입니다. 동물계건 식물계건, 어디에 속한 생물일지라도 말입니다.

자, 먼저 공작새의 아름다운 깃털을 한 번 살펴볼까요. 여러분은 공작새 깃털의 정교한 무늬가 어떻게 알에서 나왔는지 생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속에는 그저 노른자위와 흰자위밖에 들어 있지 않았던 그 알에서 말입니다. 어떻게 갖가지 알록달록한 색깔이 거기서 나왔을까요? 그것도 특정한 새한테서만 그런 색깔이 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공작새가 꼬리를 화알짝 펼치노라면, 그 자태가 어쩌면 그리도 아름다운지요. 어쩌면 그리도 완벽하게 무늬들이 깃털 위로 저마다 제자리에 새겨졌을까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 한 분만이 그런 일을 하실 수 있습니다. 자, 그럼 다시 달걀 이야기로 돌아가 봅시다.

달걀의 뾰족한 쪽 끄트머리의 껍질은 둥근 쪽 껍질보다 훨씬 더 두껍습니다. 그래서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올 때는 둥근 쪽 껍질을 깨고 나오게 되지요. 이것은 다름아닌 하나님께서 설계하시고 배치해 놓으신 겁니다. 바로 병아리가 얇은 쪽 껍질을 쉽게 쪼아내고 나올 수 있도록 말이지요.

한편, 달걀의 둥근 끄트머리에는 공기 방이 있습니다. 이 방은 팔팔 끓인 삶은 달걀 껍질을 다 까 보면 금새 알아볼 수 있지요. 이 공기 방은 달걀 속에서 병아리가 형성될 때 제자리를 잡게 되는데, 바로 둥근 쪽 끄트머리가 그 자리입니다. 그렇게 해서 병아리 부리가 공기 방에 들어가도록 머리는 둥근 쪽에 놓이게 되는 것입니다. 암탉이 알을 품는 3주 동안에, 아무리 이리 뒤척 저리 뒤척을 숱하게 할지언정 아기의 자세를 흩뜨리는 법은 없습니다. 이 역시 하나님의 신비라고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을 겁니다. 사람이 이런 일을 하기란 불가능하려니와,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런 일을 하셨는지 이해하는 것 역시 불가능합니다. 아이들이 제아무리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면서 놀아도 달걀은 끄떡없답니다. 그래도 병아리 부리는 언제나 둥근 끄트머리의 공기 방을 향하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노른자위의 구조를 관찰해 보았더니, 마치 전함처럼 지어져 있더군요. 노른자위는 아래쪽일수록 속이 꽉 차 있어 색이 짙고 무거운 반면, 위쪽일수록 드문드문 성겨 있어 색이 엷고 가볍습니다. 이것은 노른자위가 항상 똑바로 떠 있게 해 주는 역할을 합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노른자위 양쪽에는 흰자위에서 나온 줄이 한쪽 붙어 있고, 껍질 안쪽에 다른 쪽 줄이 신기하게 붙어 있지요. 이 흰자위 줄은 상당히 미끈거리기 때문에 이들의 결합도 아주 미끌미끌합니다. 그래서 달걀을 아무리 이리저리 굴릴지라도 노른자위가 뒤바뀌지 않고 제자리에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 줄이 노른자위를 언제나 똑바로 떠 있게 해 줍니다. 달걀 요리를 할 때 먼저 우리가 손가락으로 떼어 내 버리는 "하얀색" 부분이 바로 그 줄입니다.

한편, 아기 병아리의 작은 부리는 아주 부드럽기 때문에 그 부리만으로는 딱딱한 껍질을 쪼아 내기란 너무 힘겹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딱 한 번만 사용될 특별한 도구를 만드셨습니다. 이것은 아주 단단한 물질로 만들어진 쬐그만 원뿔 모양이어서, 아기 병아리 부리에 꼭 들어맞는답니다. 병아리가 껍질을 거뜬히 깰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단단한 꼬마용 원뿔 덕분입니다. 공기 방에는 병아리가 숨 쉴, 딱 이틀 분의 공기만 들어 있습니다. 병아리가 숨을 쉬기 시작한 후, 시간이 지나 숨 쉴 마지막 남은 공기까지 다 소진하고 나면, 병아리가 숨을 쉬려고 약간 몸을 위로 올립니다(그 안에는 공기가 없으니까요). 숨을 쉬려고 부리를 앞으로 쭉 내밀 때 그 충격으로 껍질에 구멍이 나고요, 위로 솟아 있던 몸으로 껍질을 충분하게 깨부숩니다. 이런 식으로 부화하게 되는 것입니다. 병아리가 부화한 지 이틀이 지나면, 그 단단한 꼬마용 원뿔은 부리에서 자연히 떨어지게 됩니다. 더 이상은 사용할 수가 없으니까 말입니다. 간혹 계속 달라붙어 있는 경우도 있는데, 그럴 땐 농부 아저씨가 손으로 직접 떼어 주기도 하지요. 하나님께서는 병아리들에게도 참으로 인자하지 않습니까!

부화된 병아리들이 제 어미를 알아보는 것 또한 얼마나 경이로운지 모릅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도 용케 알아봅니다. 게다가 부화된 병아리들이, 저마다 먼 동네에 사는 암탉들이 품고 있었던 것일는지도 모르는데 말이지요. 병아리와 품에서 그 병아리를 부화시킨 암탉과의 사이에는 과연 어떤 유대관계가 있는 것일까요? 글쎄, 우리들이야 잘 모르지요. 이것이야말로 또 하나의 경이로운 하나님의 신비가 아니겠습니까?

여러분은 "어떻게 해서 닭은 밤에 잠잘 때도 홰에서 떨어지지 않을까?"라고 궁금해 한 적이 없습니까? 우리들은 나뭇가지 위나 울타리 위나 아주 좁다란 선반 위에서는 잠을 잘 수 없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하나님의 노련하심과 지혜로우심의 또 다른 면으로 우리를 인도해 줍니다. 네 개의 닭 발가락에서 나온 힘줄들은 발바닥의 볼록한 곳에 하나의 힘줄로 모아집니다. 이 힘줄은 다시 두 개의 깊은 홈을 지나, 다리의 앞쪽을 칭칭 감으면서 올라가 대퇴부에 이르고, 거기서 부채꼴 모양의 근육으로 퍼집니다. 다리를 뻗치면서 동시에 발가락을 쫙 벌리면, 닭이 걸을 수 있게 되지요. 그러나 닭이 앉을 때에 이 힘줄은 관절을 팽팽하게 가로질러 놓이게 되는데, 발가락을 오므릴라치면 이 힘줄을 끌어당기면 됩니다. 암이 홰에 앉아 있을 때는 어김없이 발가락은 자동적으로 횃대를 단단하게 꽉 쥐기 때문에, 설사 거기서 잠을 자더라도 결코 떨어지는 법은 없답니다. 자, 가령 하나님께서 암탉이 편안하게 잘 수 있도록 이런 방법을 강구해 두시지 않았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렇게 되면 우리들은 늙은 암탉들을 숱하게 구해 내느라고 안절부절못했을 것입니다. 게다가 달걀을 얻으리라고는 기대도 말아야 할 겁니다. 얼마나 끔찍한 일이겠습니까!

암탉이 자신의 품에서 부화시킨 병아리와 그 암탉 사이에 스며 나오는 끈끈한 유대관계를 생각해 보십시오. 바로 예수님께서도 우리를 향하신 그분의 사랑과 따사로운 돌보심을 이 아름다운 관계로 묘사해 주셨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치 암탉이 자기 병아리들을 날개 아래 함께 모으듯 내가 얼마나 자주 네 자녀들을 모으려고 하였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눅 13:34)

여기서 우리는 암탉이 자기 병아리들을 자기 날개 아래로 불러 모으는 네 가지 경우를 볼까 합니다. 첫 번째 경우는 식사 시간에 부릅니다. 맛나는 모이나 빵 부스러기, 벌레나 곤충을 준비해 놓고서 말이지요. 엄마가 빨리 오라 부르면, 병아리들은 맛있는 저녁을 먹으려고 달려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도 우리에게 『내가 생명의 빵이니라. 내게 오는 자는 결코 배고프지 아니하며, 또 나를 믿는 자는 어느 때나 결코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 6:35)고 말씀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두 번째 경우는 경험 많은 암탉이 하늘에 떠 있는 불길한 까만 물체를 볼 때입니다. 그 검은 물체가 계속해서 주위를 빙빙 돌면서 점점 커지면, 그 때 엄마는 병아리들에게 황급히 소리쳐서 매의 위협을 알리고, 그들을 불러 모으지요. 또 이런 경우도 있습니다. 암탉이 천둥소리를 들을 때나, 번쩍하고 번개치는 것을 볼 때나, 차가운 바람이 불어서 나뭇잎들이 흩날리는 것을 볼 때면, 어김없이 자녀들을 부릅니다. 폭풍이 곧 몰아치리라고 병아리들에게 빨리 알리고 은신처로 불러 모읍니다. 마지막으로, 뉘엿뉘엿 해가 지고 어둠이 드리워지면, 엄마는 와서 편히 쉬라고 어린 보물들을 불러 모은답니다. 우리도 역시 이렇게 주님께 나아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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