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슨의
잠언 1
개미들,
피크닉 가다
월터 윌슨
지음 / 조미정 옮김
솔로몬왕은
성경의 두
군데에서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는
개미에게로
우리의 관심을
끌어들입니다.
그는 잠언 6:6에서
기록하기를 『너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로 가서
그 길들을
살펴보고
지혜롭게 되라.』고
했습니다. 다시
잠언 30:25에서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개미들은
강하지 못한
백성들이나,
그들은 여름에
음식을 예비하며.』
지혜로 유명한
솔로몬왕이
개미에게서
가르침을 받기를
권면했으니,
우리도
잠깐이나마
그렇게 해
보았으면 합니다.
매우 즐겁고
흥미로운 일이 될
것입니다.
개미는
세상에서 가장
바쁜 피조물인
반면, 한가로이
소풍도 갈 만큼
시간의 여유가
있는
피조물이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개미들이 얼마나
빨리 식량을
찾아내는지
주목해 본 적이
있습니까? 그들은
소풍 장소를 잘
물색할 뿐만
아니라 모든 식품
저장실도 잘
찾아냅니다.
그들은 젤리와
잼을 좋아합니다.
그들은 설탕과
시럽을 즐기기
때문에 그 속에
들어가는
개미들을 막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는 것도
잊을 만큼
빈틈없이
부지런하게
식량을
찾아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전혀 피곤함을
모르고 일하는 것
같습니다. 그들은
지칠 줄 모르고
끈기 있게 일하는
습성을
지녔습니다.
그들은 "낮 동안에"
일을 합니다.
그리고 모든 착한
아이들이 그러한
것처럼 밤에는
집에 있습니다.
나는 어느
날 솔로몬의
훈계를 아주
진지하게
받아들여 휴대용
확대경을 가지고
가족과 공원으로
소풍을 갔습니다.
확대경으로
샅샅이
살펴보다가 아주
작은 길 하나를
발견했는데, 그
길은 개미들이
만들어 놓은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 길 옆에
비스듬히 누워서
개미 숙녀가
나타나기를
기다렸습니다.
알다시피
피크닉에 가는
개미들은 모두
여성입니다.
그것은 "여자들에게
일을 달라."의
일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컷
개미들은
아기들을 돌보는
것과 집안 일을
하기 위해 땅 속에
남아 있습니다.
물론 솔로몬은
돕는 자들이
많았기에 그럴
필요가 전혀
없었습니다.
나는 오래
기다리지
않고서도
사랑스럽고
귀여운 개미
숙녀가
저녁거리를 찾기
위해 그 길을
찬찬히 걸어오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나는
재빠르게 길
모퉁이에 빵 한
조각을
놓았습니다.
그랬더니 귀여운
개미양이 그것을
금방
발견했습니다.
그녀는 자기가
감당할 수 있는
최대의 양의 짐을
지고 왔던 길을
되돌아 집으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또
다른 개미가 곧
그녀를
만났습니다. 나는
이어지는 만남을
흥미롭게
관찰했습니다. 첫
번째 개미는 빵
조각을 내려놓고
앞발로 두 번째
개미의 몸을
부드럽게 치며
그녀에게 자기가 "찾은"
아주 귀한 곳에
관한 희소식을
어떤 방법으로
전했습니다.
놀랍게도 두 번째
개미는 첫 번째
개미가 땅에
내려놓은 빵
조각을
빼앗으려고 하지
않았다. 두 개미가
빵을 지고 길을
따라 되돌아가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작업은 계속
반복되었고,
그때마다 길에
놓여 있던 남의
빵을 훔쳐
달아나는 개미는
없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마음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닭이나 개나
돼지들은 다른
동물들이
내려놓은 음식
조각이 있으면
그것을 재빨리
낚아채서는
먹어치우거나
멀리 도망가
버립니다. 그러나
개미는 결코
그렇게 무례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다른 개미들의
권리를 존중하며
소유권의
타당성을
인정합니다.
그들은 이기심이
전혀 없습니다.
개미들이
수확한 귀한 짐을
지고 집을 향하는
여정에서 그들은
자기들이 "찾은"
많은 것을 말하여
이내 개미들은 한
물결을 이루게
되었고, 얼마
걸리지 않아 빵
조각 모두가
그들의 땅속 집에
겨울을 대비하여
안전하게
저장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은혜의 복음)도
이와 같이
확산됩니다. 한
사람이 '생명의 빵'에게로
와서 배부르게
양육받습니다.
그러면 그가 그의
여정 중에 만나는
사람들에게
자기가 찾은
놀라운 보물을
말합니다. 혀와
펜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생명의
빵'이라는 복음이
전파됩니다. 그와
같은 방법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돌아왔지만,
아직도 세상의
절반 정도는 이
복음을 접해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찾기만
한다면 그들도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개미는
귀가 네 쌍이나
된다. 한 쌍은 두
앞다리에
있습니다. 또 한
쌍은 복부에 있고,
또 다른 한 쌍은
흉부에 있고,
나머지 한 쌍은
머리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귀여운 곤충에게
이례적으로 들을
수 있는 능력을
주시는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왜냐하면 개미가
너무 작아서 많은
것을 볼 수 없고
따라서 위험을
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코끼리들뿐만
아니라 개미들도
돌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역시도
돌보십니다.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을 아무리
작고 보잘것없이
생각하고,
위약하고
시시하게
여길지라도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생활하는
매순간을
돌보십니다.
그러기에 그분은
여러분의 온전한
헌신과 신뢰를
원하십니다.
개미는
여름 동안 매우
부지런하게
활동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겨울이 오면
피크닉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눈과
얼음이 땅을 덮고
있는 때에는 감히
모험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기온이 얼음이 얼
정도로 내려가는
때에 집을 나설
정도로 바보는
아닙니다. 그들은
얼어붙은 식량을
땅에서 떼어 내어
가져갈 수 없다는
것을
누군가에게서
배운 것입니다.
개미들은
이 필요한 모든
것을 어디서
배웠을까요? 어떤
무신론자나
이교도가 언젠가,
어딘가에 미래에
관해 개미들을
가르치기 위해
학교를
세웠을까요? 이
유식한 신사님들,
친절하게
나오셔서 개미가
어떻게 그토록
지혜롭게
되었는지 답변 좀
해 주시겠습니까?
에... 아마도, 개미와
코끼리와 악어와
개가 모두 최초의
원형질군에서
분리되었을 때,
그들이 서로의
생활 방식 차이로
그들 스스로
나뉘어졌고
스스로 교육했을
겁니다.
우리 시대
유수한 대학들의
교수님들이 모여
이 신비를
장황하게
설명하는 것을
그냥 봐 주어야
되겠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지혜를
어리석게
만드시기"
때문입니다. 모든
입법자들,
재담꾼들, 스포츠
작가들, 실업가들,
그리고 여기에
모든 교사들과
교수들을 더하고,
또 그것에다 이
나라의 모든
정치가들과
자유주의
설교자들을 모두
합친다 해도 그들
중 아무도 죽은
개미에게 생명을
줄 수도 없고, 살아
있는 개미에게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칠 수도
없습니다. 보좌
위에 계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만이
그것에 관해 모두
아십니다.
하나님만이 죽은
개미에게 생명을
주실 수 있고, 살아
있는 개미에게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치실 수
있습니다.
모세는
미래의 심판을
믿었고 그것을
대비했기 때문에
하나님께로부터
수행해야 할
과업을
위탁받았습니다.
그는 복수의
천사가 한밤중에
그 땅을 지나갈 때
피 아래 있지 않는
모든 첫태생이
멸절되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자기의 집도
그것에서
면제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자기의 집이 그
피로 보호받아야
함을 믿었고
하나님께
순종했습니다.
그래서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에
발랐으며, 그의
집이
구원받았습니다.
노아 역시
장차 임하게 될
심판과 진노를
믿고 그것을
대비했기 때문에
하나님께로부터
수행해야 할
과업을
위탁받았습니다.
그는 개미들이 한
것처럼
행했습니다.
고난에 앞서 미리
준비하여 방주를
지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고 그분이
지시하는 대로
방주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는 개미들이
가르치는 교훈을
배웠습니다. 폭풍
대피용 지하실은
미래의 태풍을
대비합니다.
사람들은 추운
겨울을 대비하여
여름에 석탄을
사둡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다가올 하나님의
진노의 폭풍을
대비하는
피난처이십니다.
여러분은
개미처럼
지혜롭게 되어야
합니다. 바로 지금,
잠시 후면 다가올
하나님의 진노의
폭풍을
대비하시길...BB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