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서 외부의 공격에 대해 양처럼 무방비상태인 동물도 없다. 모든 동물
중에서 맹수의 공격에 가장 무방비상태에 상태에 동물은 바로 양이다. 양은 공격에 대비해 아무런 방어책이
없다.
다른 모든 동물은
대개 방어 체계를 갖고 있다. 고양이류의 동물들은 이빨과 발톱을 갖고 있는 데다 재빠릴 줄달음칠을 칠 줄
안다. 사슴과 영양은 뛰어난 후각, 민첩성, 속도와 도약할 수 있는 힘이 있다. 거구의 짐승들은 큰 체구와
육중한 체중 외에도 날카로운 송곳니와 뿔, 두터운 털가죽을 갖고 있다. 단단한 발굽을 가진 말과 나귀,
노새, 얼룩말 및 이들과 가까운 친적들은 빠른 속도로 달리는 데다 뒷발질도 하고 이빨로 물 수도 있다.
멧돼지와 고슴도치는 가시 같은 털을 갖고 있다. 스컹크는 고약한 냄새를 풍긴다. 거북이는 단단한 껍질이
있다. 뱀은 독니로 독을 뱉어낸다. 그 외에 다른 동물들은 보호색으로 몸을 숨기거나 어떤 모양으로든 자신을
보호하는 다양한 장치를 가지고 있다.
그와 대조적으로
양만은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다. 보호를 위한 어떤 장치도, 어떤 대비책도 없다. 빨리 달릴 줄도 모르기
때문에 쉽사리 잡혀 버리고 만다. 물어 뜯을 이빨도 날카로운 발톱도 없다. 높이 뛰어오를 수도 없다.
송곳니도, 두터운 털가죽도, 뿔도(일부 숫양을 빼고는) 없다. 그렇다고 뛰어난 시력이나 청각, 후각을 가지고
있어서 멀리 있는 위험 요소나 맹수의 공격을 알아차리고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공격을 받으면 맞받아
공격을 할 힘도 없고 그렇게 하려 들지도 않는다. 양은 털깎는 자 앞이든 맹수 앞이든 그저 "말이 없기만"
하다. 양에게는 방어 수단이 없으며 공격에 대해 전혀 무방비 상태이다.
미국의 자그마한
코요테(늑대의 일종)는 자원 보호론자들이 선정한 보호 대상이 된 뒤로 미국에서 방목되는 수많은 양들을
잡아먹어 버렸다. 일전에 미국 오레곤 주의 살렘 시에서 열린 방에서 최우수 양을 선정하는 심판으로 참가한
적이 있는데, 방목을 촉진하는 단체에서 다음과 같은 포스터를 게재한 것을 보았다. "1천만 마리의 코요테들이
미국의 양들을 잡아먹고 있다." 통계 자료에 따르면 미국에서 방목되는 양은 50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에
5천 5백만에서 천2백만으로 줄어들었으며 이는 맹수의 공격에 따른 것으로 추정된다.
양털 깎는 법을
강의하기 위해 남미의 칠레를 방문하던 중 목자들과 사냥개 몇 마리를 데리고 이틀에 걸친 퓨마 사냥을 해야
했던 적이 있다. 그 퓨마 녀석은 몇 주 동안 계속해서 하루밤에 양 한 마리씩 해치운 녀석이었다. 양들은
퓨마의 교활하고 민첩하며 막강하고 파괴적인 이빨과 발톱에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당하기만 했다. 궁지에
몰려 총에 맞아 죽은 퓨마를 내보이자 목자들과 양떼들 모두 기뻐했다.
여러분은 양을
보유하고 있는 야생 동물 공원이 왜 하나도 없으며 왜 양은 야생 동물 공원에서 왜 제외되는지 궁금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남아프리카의 유명한 크루거 야생 동물원에서 나는 서른 두 종류의 동물을 보았지만 양은 단
한 마리도 없었다. 그 이유는 양은 스스로를 방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양은 목자가 보호해 주지 않으면 단
5분도 혼자서는 생존할 수 없는 동물이다. 양을 잡아먹는 짐승에는 코요테에서부터 여우, 곰, 살쾡이, 퓨마,
사자, 늑대, 독수리, 악어, 야생 개, 하다못해 동네 애완견에 이르기까지 끝이 없을 정도다. 성경은 삼킬
자를 찾아 돌아 다니는 사자 앞에서 양이 얼마나 힘 없는지를 자주 말씀하고 있다. 갓 태어난 새끼양은
맹수에게 가장 쉬운 식사거리이다.
힘 없고 무방비
상태의 양이 쫓기고 궁지에 몰리고 공격당하는 모습보다 더 가슴아픈 광경도 없다. 양은 즉각적으로 겁을
집어먹고 불안해하며 당황한다. 양은 우리나 동굴 같이 안전하게 도망칠 곳을 미친 듯이 찾는다. 양은
본능적으로 다른 양들을 향해 도망친다. 급히 떼를 이루어서 안전을 찾아 보려는 것이다. 주로 숫양이 암양과
새끼양을 보호하기 위해 나서며, 양들은 숫양의 보호 아래 무리를 짓는다. 하지만 그 중 한 마리가 분리되면,
양떼로부터 떨어져나오면, 그리고 양떼나 양우리로 돌아가는 길이 막혀 버리면 그 양은 공포에 질리게 된다.
겁을 먹고 울면서 기력이 다할 때까지 이리저리 정신없이 뛰어 다니는 한편 나머지 양떼는 놀란 채 후퇴한다.
그 다음 일어나는 일은 차마 말하기가 끔찍할 정도이다. 힘없는 양이 맹수에게 잡혀먹는 광경이란.
양의 공포는 쉽게
드러난다. 바깥 세상은 그야말로 약육강식의 세상인 것이다. 양을 사냥하는 맹수들이 도처에 있다. 양은 참으로
힘없고 자기를 방어하지 못하는 연약한 동물이다. 그러한 양에게 두려움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두려움은
건강하고 실제적인 것이다. 목자 없이 양은 결코 살아남을 수 없다.
여기서 또하나의
교훈을 배워 보자. 목자 없는 양이 완전히 무방비 상태인 것처럼, 우리 또한 선한 목자이신 주님이 없이는
공격에 쉽게 쓰러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무서운 영적 전쟁 속에서 살고 있다. 우리는 수많은 맹수들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으며, 그 맹수들 중에는 우리의 대원수 마귀가 있다. 성경은 우리에게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으라고 명령한다. 마귀가 울부짖는 사자같이 삼킬 자를 찾아 두루 다니기 때문이다.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으라. 이는 너희의 대적 마귀가 울부짖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아 두루 다니기 때문이니라(벧전
5:8).
우리는 얼마나
쉽사리 불식간에 붙잡혀 희생당하고 마는가. 특히 우리가 지나치게 자신만만하거나 무사태평할 때, 또는 '그런
일은 나한테 결코 일어날 수 없다'는 잘못된 안도감에 안주하고 있을 때 그렇다.
얼마나 많은
위대하고 능력있으며 똑똑한 사람들이, 큰 업적을 남긴 위대한 지도자들, 고결한 시민들, 유명한 배우들과
작가, 시인, 화가, 음악가, 연설가, 정치인, 군사 영웅들이 그만 저 무서운 맹수 사탄에게 희생당하였는가.
자신이 지닌 천재성과 독창성, 크나큰 성공에도 불구하고 한 순간의 유혹에 빠져 그만 모든 것을 잃고 마는
것이다.
그 거대한 악의
세력은 현 세상에 풀려나서 선한 사람들의 눈을 멀게 만들고 인간의 욕망과 인간의 약점을 미끼삼아 그들을 죄의
노예로 만들고 있다. 우리는 우리 주위의 타락한 사람들이 어떻게 해서 그렇게까지 되었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어떻게 그렇게 똑똑하고 재능있는 사람들이 그처럼 어리석고 말도 어처구니없는 짓을 저지른단 말인가? 인생의
승리자로 여겨지던 사람들이 그처럼 쉽사리 희생자로 변하며, 그것도 너무나 갑작스럽게, 너무나 쉽게 타락하고
마는 것인가? 왜 강한 자가 그렇게도 쉽게 떨어지는 것인가?
우리가 양처럼
연약하고 유한하며 힘없고 자기를 방어할 줄 모르며 공격에 무방비상태라는 것을 알면 그러한 현실은 그다지
놀라울 것도 못된다. 선한 목자 주님이 아니면 우리는 맹수 마귀의 기만, 미혹, 유인, 속임수와 계략에
쉽사리 희생당할 것이다. 우리의 유일한 소망, 우리의 유일한 방어책, 우리의 유일한 대책은 선한 목자께
있으며 그분만이 저 무서운 맹수를 능히 물리쳐 주실 수 있다.
다윗은 시편
27편에서 그의 힘의 원천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주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주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내 원수들과 대적자들이...내게 왔다가
걸려 넘어졌도다.
그 자신이
목자였던 다윗은 위대하신 목자께서 그분의 막대기와 지팡이로 우리를 보호해 주시마고 약속하신 위대한 진리를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주님께서 원수들의 면전에서 우리를 위하여 식탁을 마련하실 것이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머리 위에 기름으로 부으실 것이다...
위대한 사도
바울은 혼의 대 원수 앞에서 각인이 얼마나 나약한지를 잘 알고 있었으며, 성도들에게 주님께서 주시마고
약속하신 갑옷으로 무장하라고 명령하고 있다.
주 안에서와 그의 힘의
능력 안에서 강건하라.
너희는 마귀의 술책에 대항하여 설 수 있도록 하나님의 전신갑옷을 입으라...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전신갑옷을 입으라.
이는 너희가 악한 날에 저항할 수 있으며
또 모든 일을 다 이루기까지 서 있게 하기 위함이니라.
그러므로 서서 진리로 너희의 허리띠를 두르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화평의 복음을 준비한 것으로 너희 발에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짐으로써
능히 너희가 악한 자의 모든 불붙은 화살을 끌 수 있을 것이라.
또한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칼,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엡 6:10-17
이 얼마나 큰
도전인가! 얼마나 큰 교훈이며 또 약속인가! 주님의 능력 안에서, 그분의 힘의 능력 안에서 우리가 강건할 때
영적 승리는 보장받는 것이다!
이 구절의 의미를
깊이 묵상해 보자. 양 스스로에게는, 자신의 힘과 능력 안에는 나신을 방어할 수 있는 길이 전혀 없지만,
선한 목자 주님의 양떼에 속해 있는 양이라면 그 양은 어떤 이도 해칠 수 없다. 그분의 양은 결코 부족함이
없을 것이며, 결코 두려워하지도 않을 것이다. 죽음의 그림자의 골짜기를 지나야 할 때도 있을 것이나, 주와
함께 행하는 양은 악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 곁에는 선한 목자께서 함께 행하시기 때문이다. 무방비
상태로 있을 필요도 없고, 공포 속에서 당황할 필요도 없으며, 망연자실해할 필요도 없다. 우리의 목자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
이 진리를 상고해
보자. 우리 자신의 힘은 연약한 때, 바로 그 때가 우리가 선한 목자 안에서 참으로 강해지는 때이다. 현명한
양은 목자로부터 독립을 선언하지 않으며 자기에게 오는 맹수들을 자기의 힘으로 당해 내려고 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기꺼이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며, 맹수를 물리쳐 주시는 목자의 힘에 기꺼이 의지한다. 위기에 처했을
때, 고난에 처했을 때, 공격을 당했을 때 현명한 양은 목자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가며 자신과 맹수 사이에
목자를 서게 한다. 주님은 양 우리의 문이시기에 어떤 위험이나 원수도 그분을 뚫고서 들어오지 못하는 것이다.
궁극적인 승리는
결단코 우리에게 있다. 그 어떤 것도, 그 누구도 왕 되신 우리의 목자보다 더 강하고 더 큰 능력을 지니지
못하였다. 주님은 우리를 보호해 주실 것을 보장하실 뿐 아니라 우리를 승리로 이끄신다고 약속하신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신다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떼어 놓을 수 있으리요?
환난이나 곤경이나 박해나
기근이나 헐벗음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우리가...도살당할 양으로 여김을 받았나이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분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이기는 자들보다 더 나으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현재의 일들이나 다가올 일들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어떤 다른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떼어놓을 수 없으리라.
롬 8:35-39
우리의 목자께서는 승리자
그리스도시다. '너희 안에 계신 분이 세상에 있는 자보다 더 크시기 때문이라.' (요일 4: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