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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은 구원을 받으셨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의 지식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딤전 2:4)                                                                                                                  구원을 받은 기억이나 확신이 없는 분은 이 글을 누르십시오.                                                                                                                        더 늦기전에!

 


 

잃어 버린 양  
 
UP
주님의 발자욱 소리
주님을 기다리며
잃어 버린 양
배고프고 목마른 양
무방비 상태의양
아낌없이 주는 양
 

 

by unknown author

 

  길을 잃는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아무 힘없는 양에게는 길을 잃는다는 것이 더욱 비참한 일이다.

  집에서 몇 마일 안떨어진 곳에서 길을 잃을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 양이다. 대부분의 동물들은 길을 찾는 비상한 능력을 타고난다.

  그 중 가장 감동적인 이야기는 '돌아온 래시'일 것이다. 낯선 땅에서 강과 들, 언덕과 산들, 시골길을 건너 수백 마일 길을 지나 집을 찾아온 한 콜리견의 모험담이다. 수십 일 동안 그 먼 길을 지나면서 온갖 역경을 딛고 래시는 지친 몸과 상처입은 발을 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이 모험담은 우리의 마음을 감동으로 채우며, 특히 영화가 더욱 그러한데, 디즈니 사에서 제작한 가장 감동적인 영화 중 한 편으로 꼽을 수 있다.

  개나 고양이, 말, 기타 여러 동물을 주인공으로 한 이와 유사한 이야기들이 많이 있다. 수백 마일이나 떨어진 낯선 땅에서 마침내 농장으로, 방목지로, 농장 뒷문으로 돌아와 깜짝 놀라 반가이 맞는 주인에게로 돌아오는 이야기들이다. 들짐승들의 경우에는 먼 곳에 흩어져 있다가도 원래 있던 곳으로 되돌아오는 경우가 흔히 있다.

  그러나 양만은 예외이다.

  폐쇄된 장소에서는 양도 어느 정도 길을 찾을 수 있다. 양은 자기 초장을 알고 계곡, 심지어 자기가 태어난 곳과 어미양의 젖을 빤 곳도 기억한다.

  양은 아침 일찍 한쪽에서 풀을 뜯었으면 나중에는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하지만 그늘에 들어가 쉬는 것은 늘 똑같은 장소이고, 똑같은 그룹에 섞여 잠자며, 풀을 뜯는 다른 어떤 동물보다도 자기가 원래 풀 뜯던 곳을 좋아한다.

  그러나 이 가엾은 양을 낯익은 땅에서 떠나게 만드면 양은 완전히 길을 잃고 만다. 방향 감각이 전혀 없다. 적응력도 없다. 집 찾아가는 길을 전혀 찾지 못한다. 그저 원을 그리며 돌다가 당황했을 때 그러듯 '매애애앰' 소리만 계속 내고 겁에 질려 어쩔 줄을 모른다. 장이나 경매에서 구입한 양도 처음에는 혼란스러워하고 적응하지 못하다가 며칠 후에야 비로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양들은 겨울을 나기 위해 온난한 저지대로 옮겨딘 뒤에도 봄이 되면 다시 그들이 태어난 장소로 이동된다. 그렇지 않으면 생전 처음 와 보는 낯선 환경에서 당황한 양들은 안정을 찾지도, 환경에 적응하지도 못해 여러 날을 괴로움 속에서 보내게 된다.

  고지대에 있는 방목지에는 울타리가 없는데, 각 목장주가 소유한 양들은 자기네 구역에 그대로 남아 있는다. 스코틀랜드에서는 큰 무리의 양들이 모여 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는데 - 8천에서 1만 마리까지 - 그 중 이웃 목장에 속한 양들은 고작해야 이삼십 마리밖에 안된다.

  길 잃은 양에 대한 성경의 묘사는 진리 그 자체이다. (흔히들 생각하는 바와는 반대로) 양들은 매우 아름답고 겸손하며 대단히 영리한 반면 너무나도 쉽게 길을 잃고 방황한다. 일단 길을 잃으면 먹이나 물은 전혀 찾지 못한다. 양떼에게 사시사철 하루도 빠짐없이 먹이를 주고 물을 공급해 주며 풀을 뜯을 수 있도록 돌봐 주는 수천 명의 헌신적인 목자들이 아니라면 전세계 11억 마리 양들은 얼마 안가서 굶거나 목말라 죽고 말 것이다.

  누가복음 15장의 길 잃은 양의 비유만큼 가장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으면서 생생한 묘사도 없을 것이다. 그 누구보다도 더 적절한 비유를 말해 주시는 예수님께서는 양의 심리를 가장 잘 묘사하셨다. 다른 모든 동물들은 몇 시간이 흐른 뒤에라도 자신이 흘린 냄새를 추적해서 실마리를 찾아내고 동무들이 있는 곳을 찾아갈 수 있다. 하지만 양은 예외이다! 가엾은 양은 길을 잃어버리면 갈피를 못잡고 방황하다가 어쩔 줄 몰라 포기하고 만다.

  이 유명한 비유는 양의 상태를 생생하게 묘사해 주며, 목자 없이 내버려진 인류의 애처로운 영적 상태를 말해 준다. 목자로서의 경험과 이사야 53장의 예언적 말씀을 알고 계셨던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진리를 잘 알고 계셨다.

  이 구절의 심오한 의미는 그것이 기록되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아니 그 어느때보다도 오늘날의 현실에 들어맞는다. 이 점에 대해 깊이 묵상해 보자.

  21세기를 눈앞에 둔 지금, 예수님께서 사셨던 때로부터 약 2000년이 지난 지금, 인류의 위대한 업적을 우리는 자랑스러이 바라보고 있다. 인류는 수많은 눈부신 업적을 이루어왔다. 세상은 과학적, 기술적, 농업적 진보로 가득 차 있으며 온갖 경이로운 일들을 우리는 체험하고 경험하고 있다.

  남극의 매서운 추위와 사막의 뜨거운 열기, 이 모두 온도조절 장치로써 적당한 온도로 조절할 수 있다. 우리 모두는 난방, 냉방, 에어컨디셔너 등의 혜택을 톡톡히 누리고 있다.

  새처럼 날아 다니는 것은 과거에 일부 사람들만의 꿈이었지만 이제는 음속보다도 더 빨리 날 수 있으며, 공간의 제약 없이 이웃집에 걸어가는 속도로 세계 곳곳을 날아다닐 수 있게 됐다.

  과거에는 질병과 고통으로 형제와 자매가, 가족과 친구가, 아들과 딸이 열 명에 한 명꼴로 죽어갔지만, 이제는 팔뚝에 주사 한 방만 놓으면 신체의 적 질병에 대해 면역 체계가 생기고 사람들은 건강과 장수를 누리게 되었다. 신체의 각종 부분, 내장, 심장마저도 수리가 가능하고 이식되기까지 한다. 마치 기계공이 자동차 부품을 가는 것만큼이나 용이하다. 알람 소리에 잠에서 깨고 약을 먹고 잠이 드는 현대인은 자신의 모든 물질적 필요를 조달받고 있다.

  과거에 우주는 미지의 영토였으며 하나의 신비로서 남아 있었다. 놀라움과 경이의 원천, 지구에 발을 딛고 사는 자그마한 존재 인간에게 있어서는 불가사이한 대상이었지만 오늘날 인간은 두려움없이 그 발을 우주를 향해 내딛고 있다. 땅을 비추고 광대한 대양을 항해하는 선박을 인도해 주었던 저 달, 바다와 강의 조수를 움직이게 하며 연인들에게는 낭만을, 광인에게는 기이한 영향을 내려 주던 달도 인간에게 정복당하고 인간의 무거운 발자욱을 느껴야만 했다.

  이전에는 연못이나 거울을 사용해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보았지만 이제는 사긴, 영화, 비디오 테입으로 볼 수가 있다. 대중 매체는 세계 지도자, 각종 사건, 폭력, 지진, 화산, 재난 등 전세계 곳곳의 각종 활동을 즉각적으로 시청자의 눈앞에 생생하게 보여 주며 그들이 좋아하는 운동선수와 스포츠 팀의 경기도 생중계함으로써 시청자로 하여금 승리의 기쁨 혹은 패배의 쓴맛을 동시에 맛보게 해 준다.

  이전에는 식량과 사냥감을 찾아 널리 배회하던 인간이, 나무를 모아 불을 때던 인간이 이제는 일년 내내 세계 곳곳의 농산물을 즐길 수 있으며 마이크로웨이브 오븐에서 몇 초만 데우면 조리가 끝나는 즉석 요리를 먹는다. 인간의 성취는 광범위하고도 인상적이며, 이는 통신, 운송, 농경, 의학, 교육 등 인간 삶의 전 영역에 미친다.

  인류는 과연 만물의 영장이다. 어류, 동물, 조류, 기타 모든 형태의 생물들의 조인이며 인간은 그들 위에 군림해 왔다. 인간은 동물의 왕국의 군주이다. 인간은 광물의 부도 모두 차지했다. 인간은 원소와 중성자, 양자, 원자력까지 자유자재로 동력화했다. 이 세상 모든 것은 그의 지성과 과학, 기술의 힘을 감지했고, 세상은 보다 낫게 혹은 더 나쁘게 변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인간은 과거 여느 때와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다. 그의 혼과 내적인 영적 성품은 창조 때부터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오직 살아 계신 주님을 믿고서 위에서부터 오는 새로운 출생을 경험한 자들만이 예외이다.

  인간이란 존재는 하나의 수수께끼요 모순이며 역설이다. 그토록 진보된 것 같고 영리하고 똑똑한 것처럼 보이지만, 적어도 지성의 면에서는 모든 동물 위에 뛰어난 것 같지만 문명의 겉치레 이면에는 가련하고 연약한 하나님의 피조물이 숨어 있다. 참으로 시편 기자가 노래했듯 인간은 "놀랍고도 경이롭게" 지어졌으며(시 139:14) "천사들보다 조금 낮게" 지어졌다(히 2:7).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인간이다. 온갖 유한함, 온갖 연약함, 온갖 외로움, 온갖 제약, 온갖 취약점 등을 지닌 인간이다. 어떻게 이토록 뛰어난 지적 존재가 그토록 어리석을 수 있단 말인가?

  어찌하여 이 지경에 이르게 되었는가? 인간이 그렇게도 자랑스러워하는 업적들이 곧 인간뿐만 아니라 지구의 모든 생명체의 생존에 대한 가장 큰 위협의 원인이 되고 말았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건설적인 잠재 능력을 주셨건만 인간은 그것으로써 파괴적인 결과를 가겨왔다.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인간은 영적으로 길 잃은 양 같이 되었으며 더욱 커져만 가는 상실감의 희생자가 되고 있다.

  현대인은 집단적으로든 개인적으로든 선한 목자께서 찾아 주시고 사랑 많은 품 안으로 안아 주시며 그분의 강한 어깨 위에 올려 주시며 사랑해 주시고 먹여 주시며 그의 목자가 되어 주시고 무서운 상실감에서 풀어 주시어 집으로 데려가 주시는 것이 절실히 필요하다.

  인류의 성품 안에 영적으로 선하고 순결하며 거룩한 모든 것은 이미 거저 주어졌다. 20세기에 있어서 도덕적 부패는 인간 유산의 기초, 바로 가정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아버지와 어머니, 할머니와 할아버지에게 있어 가정이란 포근한 보금자리, 영적 제단이었으며 전쟁이나 질병이나 재난이나 죽음의 때에도 흔들리지 않는 닻이었다.

  '초라하고 보잘 것 없어도 내 집 같은 곳은 없어라.'

  인간 제도의 급속한 부패 속에서 가정 역시 공격을 받게 되었다. 여러 통계 자료들은 바는 의미심장한 경종을 울리고 있다. 적은 가정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사랑의 결여, 가치관과 책임감의 상실에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부정적인 시각만으로 바라보게 하려는 것은 아니다. 암울한 종말을 예고하는 사람들이 그러듯 암담한 시나리오로 사람들의 혼에 무거운 짐만 얹어 주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소망은 양의 잃어버린 바 된 상태에 머물러 있으려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양인 당신을 선한 목자께로 더욱 가까이 나아가게 하려는 데 있다. 그분 자신이 영적으로 잃어버린 바 된 인간의 문제에 대한 해답이시다. 세상에서 다른 그 어떤 것도 그분을 대체할 수 없으며 다른 것은 결단코 해답을 줄 수 없다!

  현대 이론, 철학, 심리학에서는 영적으로 잃어버린 바 된 인간의 상태에 대한 해결책을 찾을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저런 심리학적 방법으로 답을 찾아 보려고 방황하지만. 그런 사람들의 호언장담은 현대판 바벨탑이요 해답을 주는 대신 혼란만 가중시키고 있다. 그런데도 어떤 이들은 인간의 이론을 믿고 있다. 여기에도 분명 믿음이 요구된다. 선한 목자의 사랑어린 부르심에 응답하는 데도 믿음이 필요한 것처럼. 양쪽 모두 믿음이 요구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다, 인간은 영적으로 잃어버린 바 된 상태이다. 양은 참으로 쉽게 길을 잃는다. 이 사실은 양을 도살장으로 유도할 때 사용되는 법칙이다. 뉴질랜드에서는 약 4천만 마리의 양이 시장에 판매되는데, '유다'라 불리는 양이 양들을 도살장으로 이끌고간다. 이 '유다 양'은 덩지 큰 거세한 숫양으로 양들을 몰아넣는 우리 맨 밑바닥에서부터 꼭대기에 있는 도살장까지 유도한다. 불쌍한 양들은 코앞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모르는 채 그저 따라만 간다. 꼭대기에 다다르면 '유다 양'을 위한 탈출구가 열리고 이 양은 재빠르게 빠져나가 다시 밑바닥에 있는 다른 양들을 또다시 죽음의 장소로 인도하는 일을 반복한다.

  여기서 우리가 배울 영적인 교훈이 있다. 당신이 따라가는 지도자가 누구인지 주의해야 한다. 올바른 인도자를 따라가야 하고, 올바른 길, 목자이신 주님께서 지도하시는 길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가야 한다. 선한 목자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곁길로 빗나가게 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결코 우리가 해를 당하거나 상처를 입도록 이끄시지도 않는다. 그와 반대로 주님은 성령을 통하여 우리를 의의 길로, 푸른 초장과 잔잔한 물가로 인도하시며 그곳에서 우리의 혼을 소생시키신다.

  한번은 캘리포니아의 유명한 자연 공원인 요세미티에서 머문 적이 있는데, 화강암 절벽이 계곡으로부터 3000피트 높이로 치솟아 있고 아름다운 침엽수들은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 있는 그 곳에서, 향기로운 나무들로 둘러싸인 작은 통나무집에서 묵게 되었다. 하룻밤은 그곳 사무실이 있는 건물에서 숙소 쪽으로 오는데 칠흙같은 어둠 속을 걸어가게 되었다. 하늘에서 밝게 빛나는 별들은 숲 속에 나 있는 좁고 구부러진 길을 비추고 있었다. 거대한 아메리카 삼나무 가지 사이로 빛나는 별빛이 길 굽이마다 비춰 주고 있었다. 밤의 고요함 속에서, 창조물의 아름다움과 소나무 향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내 삶을 위한 그분의 계획과 인도하심을, 그분의 말씀과 성령께서 끊임없이 내 길을 비춰 주시리라는 약속을 놀라운 방법으로 깨닫게 해 주셨다. 그분께서 어디로 인도하시든지 나는 따르리라.

  누군가가 나를 찾는다는 것, 누군가에 의해 발견된다는 것은 어떤 경험일까? 한때 잃어버린 바 된 양이었던 사람에게, 목자이신 주님의 자상하신 손으로써 발견되고, 주님의 강한 어깨 위에 다정하게 들어올려진 사람에게 물어보라. 이제는 발견되어 다른 양떼들과 함께 있게 된, 집으로 돌아온 이에게 물어 보라. 더 이상 몸서리쳐지는 외로움, 맹수의 두려움, 울부짖는 사자의 울음소리와 어둠 속에 숨어 기다리는 형체 때문에 무서워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에게 물어보라. 더 이상 배고프고 목말라 고통스러워하지 않아도 되고 푸른 초장과 잔잔한 물의 고요함을 누리는, 잃어버렸다가 발견된 양에게 물어 보라.

  영적으로, 발견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목자의 직접적이고 사랑어린 돌보심을 받는다는 것을 뜻한다. 당신이 사랑하고 또한 당신을 사랑해 주는 이들과의 우정, 친밀한 관계와 교제를 의미한다. 중요하고 가치 있는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분의 초장의 양으로서 존귀한 존재로서 대접받는 것을 뜻한다. 목자께서 당신의 모든 필요를 아시고 모든 필요를 이해하시며 모든 필요를 채워 주시는 것을 뜻한다. 그것은 영적으로 당신이 먹을 영양가 있는 양식이요 마실 시원한 물을 뜻한다.

  당신이 진정으로 속한 곳, 양떼의 일원으로서 있게 되는 것을 뜻한다. 목자이신 주님께 필요를 공급받는 것을 뜻한다. 영적인 건강, 치유와 복지, 모든 상처를 깨끗게 해 주시고 건강을 돌봐 주시며 죄의 질병을 예방해 주심을 뜻한다. 보호와 무사, 모든 공포와 원수와 맹수로부터의 안전을 목자로부터 공급받는 것을 뜻한다. 끊임없는 영적 성장, 발전과 성숙을 뜻한다. 열매맺는 삶을 뜻한다. 성령 충만을 통해 맺는 사랑, 기쁨, 평화 등의 열매 맺음을 뜻한다. 생의 의미와 목적을 찾는 것, 삶에 진정으로 적응하고 삶의 방향을 찾는 것을 의미한다. 목자의 손길에 의해 이전에는 몰랐던 길, 흥미진진한 길, 의의 길로 인도받는 것을 뜻한다. 언제나 세차게 흘러나오는, 결코 마르지 않고 넘치도록 흐르는 샘을 뜻한다. 당신이 더 이상 혼자가 아니며 앞으로도 결코 아님을 뜻한다. 더 이상 소외당하지도, 무시당하시도, 학대받지도, 착취당하지도, 더 이상 두렵지고, 더 이상 공포에 떨지도, 더 이상 울부짖으며 삼킬 자를 찾아 배회하는 교활한 맹수들의 손아귀에 떨어진 힘없는 먹이가 되지도 않음을 뜻한다.

  그렇다, 양에게는 지도해 주고 공급해 주는 목자가 필요하다. 시편 23편은 목자가 무엇을 해 주며 양이 무엇을 받는가를 묘사해 준다. 이 시편을 다시 한 번 읽고 그 메시지를 묵상하라.

  양은 그 필요를 총족시켜 줄 목자가 필요하다. 양은 새로운 날 상쾌한 공기를 가르며 우리에서 데리고 나가 올바른 길로 인도해 주고 위험한 길, 잘못된 길은 피해 가게 해 주는 목자가 필요하다.

  양은 낮의 뜨거운 열기를 내뿜는 동안 속삭이는 나무과 수풀의 시원한 그늘 아래 핑화로이 쉬고 있을 때 자기들을 기켜 줄 목자가 필요하다. 양은 겨울의 폭풍 속에서 보금자리와 피난처를 제공해 줄 목자가 필요하다. 양은 자기들을 혼란 속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는 자기들에게 방향을 제시해 줄 목자가 필요하다. 양은 저녁 때 자기들을 한데 모아주고 안전한 집으로 데려와 주는 목자가 필요하다. 양은 그 자신이 양 우리의 문이신 분, 양을 우리 안으로 들어가게 해 주고 맹수와 낯선 사람을 막아 주는 문이신 그 목자가 필요하다.

  길 잃은 양은 그 한 마리의 잃어버린 양이 너무나도 소중해서 나머지 아흔 아홉 마리의 양을 우리에 남겨 두시고 잃어버린 자를 찾고 또 구원하시기 위해 광야로 나가시며, 그 한 마리의 잃어버린 양을 찾아 양떼와 양우리로 데려오시는 그러한 목자가 필요하다.

  잃어버린 양은 목자가 필요하다. 당신과 나 또한 목자가 필요하다. 우리의 목자께서는 지금도 찾고 계시다. 우리의 목자께서는 지금 부르고 계시며, 당신을 부르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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