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를
가르침으로 바꿈
변개된
성서들
(개역한글판,
NIV, NASB 등) |
구절 |
한글킹제임스성경(KJV) |
가르치심(teaching) |
마 7:28 |
교리(doctrine) |
교훈(teaching) |
막 1:27 |
교리(doctrine) |
가르치심(teaching) |
눅 4:32 |
교리(doctrine) |
교훈(teaching) |
요 18:19 |
교리(doctrine) |
가르침(teaching) |
행 2:42 |
교리(doctrine) |
그 외
변개된 구절들 - 마
15:9,2, 22:33, 막 1:22, 4:2, 7:7, 11:18, 12:38, 요
7:16,17, 행 5:28, 13:12, 17:19, 롬 6:17, 16:17,
고전 14:6, 딤전 1:10, 4:13, 5:17,
딤후 3:10, 딛 1:9, 요이 9절,
계 2:14,15,24 등등...
뉴에이지
리더들이나
아바타르(육신을
입은 신으로
자처하는 자들)들은
수많은 가르침을
제공한다. 불교
단체 중 하나인 '니쉬렌
쇼수'는 그들의
글에서 "교리의
짐스러움"과
그들의 "가르침"
사이의 차이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그들 단체의
창시자는 부처의
가르침은
원했지만 교리는
배척했다."고 한
추종자는
언급한다. 이
가르침이라는
단어는
뉴에이지의
세계종교 속으로
침투해 들어가고
있다. 뉴에이지
리더인 앨리스
베일리는 <선전포고>에서
그리스도인들의
무기인 "교리"를
그녀의 가르침과
바꿀 것을
요구한다. 이와
동일한 맥락에서
변개된 성경들은
성경에서 "교리"라는
단어를 "가르침"
또는 "교훈"이라는
말로 대체시키고
있다. [가르침은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는
것이지만, 교리는
어떤 주제에 대한
진리를 말한다.]
사도
바울은 "교리"는
멸시하는 대신 "가르침"으로
향하는 풍조를
미리 내다보고
이렇게 말했다.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이 건전한 교리를
견디지 못하고,
그들 자신의
정욕에 따라
가려운 귀를
즐겁게 해 줄
선생들을 많이
두리라. 그들이
그들의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로
돌리리라}(딤후 4:3,4).
그래서 변개된
성경을 쓰는 한국
교회들은
가르침에
대해서만 설교할
뿐 교리에
대해서는
무지하므로 가장
중요하면서
근본적인 "구원론"마저도
혼동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결국
많은 교인들이 그
무서운 지옥으로
끌려가는 것이다.
뉴에이지
리더인 에드윈
로저는 이렇게
말한다. "교리는
뉴에이지에서
그리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종교적 체험이다."
이처럼 사이비
종교 지도자들에
의해 "경험"이
진리를 밝히는
척도가 되어
교리를 대체해
나가는 일들이
현재 교회 내로
침투해 들어오고
있다. <성도들의
영적 전쟁, War on the Saints>의
저자 제시 펜
루이스(Jessie Penn Lewis)는
기록된 성경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 속에서
하나님과의
만남을 추구할 때
생길 수 있는 영적
미혹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초자연적인
것이면 모두 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으로
생각하는
자들에게 악한
영들은 교사가
되어 영적 계시를
줌으로써
자신들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게 하고
있다." 특히 한국
교회에서 이렇게
역사하는 미혹의
영에 속아
감각적인 체험에
사로잡힌 자들이
많은 이유는
변개된 성경으로
믿음 생활을 하기
때문이다. 이
변개된 성경에서
교리를 없애고
교훈 또는
가르침으로
대체시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말씀의 교리를
모르는 채 혼란
속으로 깊이
빠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심판석을 숨김 - 롬
14:10
개역한글판성경 |
한글킹제임스성경 |
하나님의
심판대 |
그리스도의
심판석 |
많은
한국 교인들은
변개된 성경들
때문에
그리스도의
심판석에 대해
무지하다.
심판석을
의미하는
헬라어인 '베마'는
바울 당시의
사람들에게
친숙한 용어였다.
올림픽
경기장에서는
경기 심판관이
앉는 높이 올려진
심판석이 있었다.
이 심판석은
누군가에게
유죄선고를
내리는 재판석이
아니었다. 그것은
규칙대로
올바르게 끝까지
달린 선수에게
상을 주기 위한
자리였다.
구원받은
것이 전부인 양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리스도인들이
심판받는다는
사실이 생소할지
모르나, 성경이
말씀하는 것은
모든 사람이
심판을 받는다는
것이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들에게
정해진 것이고 그
뒤에는 심판이
있는 것같이}(히 9:27).
심판은 구원받은
사람이나
구원받지 않은
사람이나, 또 어느
시대에 사는
누구라도 면치
못한다. 단지
구원받은 사람과
구원받지 않은
사람이 서게 될
심판의 자리가
다를 뿐이다.
성경에는
여러 가지의
심판이 제시되어
있다(말씀보존학회
간 <일곱 심판>
참고). 이 심판들
중 특히 대부분의
학자들이
오해하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심판석과 큰
백보좌 심판이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나누어 놓으신 두
가지 다른 심판을
그 차이점을
무시한 채 하나의
최후의 심판으로
주장한다. 분명한
차이점들을
무시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변개시키는 것도
서슴없이 행하는
이들은 <개역한글판성경>에서
로마서 14:10의 "그리스도의
심판석"을 "하나님의
심판대"로
바꿈으로써
그리스도의
심판석을 숨겨
버렸다.
성경을
정확히 살펴보면
이 두 심판의
차이점은 너무나
명백하여 고의로
진리를 부인하지
않는 한 간과할
수가 없다.
그리스도의
심판석에는
책들이 없지만
백보좌
심판석에는
책들이 놓여 있다.
그리스도의
심판석에는
구원받지 못하고
죽은 사람은 없는
반면 백보좌
심판석에는
수없이 많다.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는
아무도 불못에
던져지지 않지만
백보좌
심판석에서는
불못으로 많은
사람들이
들어가게 된다(계
20:11-15).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자기가 살아있는
동안 주님을 위해
구원받은 후 한
일에 대해서
계산을 해야 한다.
또 우리가 어떤
잘못된 일을
한다면 예수
그리스도 앞에
섰을 때 그 일들에
관해서도
계산해야 한다(고후
5:10).
그리스도인들은
휴거된 이후,
지상에서는
무서운 대환란이
진행되고 있는
사이에 하늘에서
"그리스도의
심판석"이라는
자리에 서게 된다.
이 심판에
대해서는
고린도전서 3:11-15과
고린도후서 5:10,
로마서 14:10에 잘
나타나 있다. 이
심판은 구원받은
것을 전제로 하며,
구원받은 사람이
구원받은 이후에
행한 일을 불로써
시험하는
심판이다. 이
심판은 심판받는
사람이 죄인인지
아닌지를
판가름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구원받은
자들만을 위한
심판이기
때문이다.
구원받은
사람들이 행한
일들은 금이나
은이나 보석,
아니면 나무나
짚이나
그루터기로
분류되는데, 그
일들을 불에
집어넣을 때
나무나 짚처럼 타
버리면 그는
손해를 당하고, 그
일들이 금이나
은이나 보석으로
불 가운데 남아
있으면 그는
면류관들을
받는다(고전 3:11-15). 이
심판은 구원과는
무관하며, 주님을
위해 일한
행위들을
심판하여 상
주시는 자리이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이미
죄에 대한 심판을
받았기 때문에
이미 깨끗해졌고
구원을 받은
것이다(요일 1:7, 엡
1:7).
그리스도의
심판석에는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의 면류관이
있다.
1. 생명의
면류관(약 1:12, 계 2:10) -
시험을 이긴 자,
순교한 자
2. 영광의
면류관(행 20:28) - 목자
3. 자랑의
면류관(살전 2:19,20, 빌
4:1, 잠 11:30, 단 12:3) -
구령자
4. 의의
면류관(벧전 2:11,
고후 5:10, 딤후 4:8) -
재림을 소망한 자
5. 썩지 않을
면류관(고전 9:25-27) -
모든 일에
자제하는 자
이처럼
그리스도의
심판석과 백보좌
심판석은 분명히
다른데 우리 한국
교인들은 변개된
성경을 사용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리를 찾아낼 수
없었던 것이다.
믿음이
없는 것인가,
있는데 적다는
것인가 - 마 17:20
개역한글판성경 |
한글킹제임스성경 |
가라사대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믿지
않기
때문이라... |
이
구절은 "너희에게
만일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으면...
너희에게
불가능한 일이
전혀 없으리라."는
말씀으로
끝나므로
예수님께서는
결코 "믿음의
크기" 혹은 "믿음의
양"을
문제삼으신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렇게 변개된
구절 때문에
사람들은 자기의
기도가 응답받지
못한 이유는
믿음이 적기
때문이며, 큰
믿음만 있으면
원하는 것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수 있다는
잘못된 확신을
갖게 된다. 또
자신에게 신유의
은사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병을 고쳐 주지
못했을 때 자기의
은사가 가짜임을
시인하는 대신 그
사람에게 믿음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며
변명을 한다.
그러나 올바른
성경에서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믿음이
적은 것을
책망하신 것이
아니라 믿지
않음을 책망하신
것이다.
기도를
막는 구절들
개역성경은
하나님 아버지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성령을
통하여
기도하라는
하나님의 기도의
공식을 완전히
망가뜨려 놓았다.
개역성경은 아들
혹은 아버지께
직접적으로
기도하라고 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하지 말라는
것이다.
개역한글판성경
|
구절 |
한글킹제임스성경 |
너희가
무엇이나 내
이름으로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
요 14:14 |
너희가
무엇이나 내
이름으로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
개역성경은
"내게"라는
단어를
첨가함으로써
하나님
아버지께
구하라는
성경적 교리를
없애 버렸다.
개역한글판성경 |
구절 |
한글킹제임스성경 |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
요 16:23 |
너희가
아버지께 내
이름으로
구하는 것은
무엇이나
너희에게
주시리라. |
개역성경은
교묘하게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라는
교리를 없애
버리고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기도하라는
명령을 아예
삭제해 버린
경우도 있다.
개역한글판성경 |
구절 |
한글킹제임스성경 |
깨어
있으라. |
막
13:33 |
깨어
기도하라. |
능력있는
기도에
동반되는 금식
또한
개역성경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개역한글판성경 |
구절 |
한글킹제임스성경 |
<삭
제> |
마 17:21 |
그러나
이런 종류는
기도와
금식에
의하지
않고는
아무것으로
내보낼 수
없느니라. |
이런
종류는 오직
기도로써
나갈 수
있느니라 |
막 9:29 |
이런
종류의 일은
기도와 금식에
의하지
않고는
아무것으로도
내보낼 수
없느니라. |
기도에
헌신하기
위하여 |
고전 7:5 |
다만 금식과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
나흘 전
내가
기도하고
있는데 |
행 10:30 |
나흘 전
이 시간에
내가 금식하고
기도하고
있었는데 |
불 "같은
모양으로"
갈라진 혀들 -
행 2:3
개역한글판성경 |
한글킹제임스성경 |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what seems to be
tongues of fire that separated : NIV) |
거기에
불 같은
모양으로
갈라진 혀들이
나타나 그들
각 사람 위에
머물더니
(there appeared unto
them cloven tongues like as of fire : KJV) |
언뜻
보기에는 별
차이가 없어
보이나
개역성경은 "불의
혀"이고
한글킹제임스성경은
"갈라진 혀들"이다.
1582년에 번역된
예수회
성경과 RV, ASV, RSV, NIV, NASV,
NRSV, NEB, 필립스
역본, 모펫
역본 등이
모두
개역성경과
똑같이 "불의
혀"가 갈라진
것으로
번역했다. 이
문제가
심각한
이유는
마지막 때
거대한
미혹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은사주의
교파들이
그들의
방언과
연관시켜
성경적 근거(?)를
제시할 때 이
구절을 들기
때문이다.
그들은
변개된
성경의 이
구절대로 "불"을
받으면
방언이
터지고
그것이 곧
성령을 받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또
마태복음 3:11의
불 침례가
방언 받고
성령 받는
성령
세례라고
주장하는데,
이것 역시
성경을
왜곡시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다음 구절인 12절에서
불침례가
쭉정이 즉
구원받지
못한 자들을
모아서
꺼지지 않는
불 즉 지옥
불에서
태우는
것으로
설명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변개된
성경은 이단
교리를
오히려
정립시켜
주고 있다.
만인구원설
- 계 21:24
개역한글판성경 |
한글킹제임스성경 |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리라 |
그리하여
구원받은
자들의
민족들이
그 도성의
빛
가운데서
걷겠으며
땅의
왕들이
그들의
영광과
존귀를 그
곳으로
가져오리라. |
미래에
"큰 도성
거룩한
예루살렘"에
들어가는
자들은 "구원받은
자들"이다.
이것을 "만국"
즉 모든
나라로
고치면 만인
구원론 즉
모든 사람이
종국에는 다
구원받게
된다는 이단
교리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구약
구원과 신약
구원의 차이 -
출 34:7
개역한글판성경 |
한글킹제임스성경 |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나 형벌
받을 자는
결단코
면죄하지
않고... |
자비를
수천
대까지
간직하며,
죄악과
허물과
죄를
용서하나 범법자가
결코
깨끗케
되지는
아니하리니... |
구약
성경 전체를
망라하여
가장 위대한
교리적
진리들 중
하나인 구원
문제를
다루는 이
구절을
개역성경은
완전히
망가뜨리고
있다. 이
구절로
구약과
신약의
구원의
차이점을 알
수 있는데,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세,
다윗, 노아 등
구약
성도들은
죄악이 결코
"깨끗하게"
되지 않았다.
그들의 죄는
우리들의
죄처럼 "제거되지"
않았다. {율법에는
다가올 선한
것들의
그림자는
있으나
그것들의
형상 자체는
없으므로
그들이
해마다
계속해서
바치는
희생제물들로는
그 곳으로
나아오는
자들을 결코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
그랬더라면
그들이 제물
드리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겠느냐?
이는
경배드리는
자들이
단번에
정결케 되면
죄들에 대한
의식이
더이상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라.
그러나 이
희생제물들로
인하여
해마다
죄들을 다시
생각나게
하였나니
이는
황소들과
염소들의
피로는
죄들을
제거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라}(히
10:1-4). 범법자 즉
죄인이
정결케 되는
일은
십자가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흘려지기까지
이루어지지
않았다.
성령을
따를 때
정죄함이
없다 - 롬 8:1
개역한글판성경 |
한글킹제임스성경 |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그들은
육신을
따라
행하지
아니하고
성령을
따라
행하느니라. |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
된다. 물론
구원받은
자들은
영원한 정죄
즉 지옥의
형벌에서는
벗어났다. {...내
말을 듣고,
또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자는
영생을 얻고,
정죄에
이르지
아니할
것이며,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느니라}(요
5:24). 그러나 이
땅에서
살면서
성령을 따라
행하지 않고
육신을 따라
행할 때
일시적인
정죄를 받게
되는 것이다.
일시적인
정죄는
아버지가
자녀에게
주는 징계를
가져온다. 이
일시적인
정죄를 받지
않는 길은
육신을 따라
행하지 않고
성령을 따라
행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육신을 따라
행할 때
정죄를
받는다. 같은
장 13절을
보자. {너희가
육신을 따라
살면 죽을
것이나,
성령을
통하여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라.} 또
로마서 14:23에도
그리스도인이
받는 정죄가
나온다. {그러나
의심하는
자는 그가
먹을지라도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으로
먹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니라.
믿음으로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
따라서
무조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게
정죄함이
없다고 한
개역성경은
교리적
오류를 범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