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대로 믿는 사람들
- 성도의 간증
1.
들어가는
기도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이
땅
드리운
어두움
속에서도
주의
뜻은
온전히
분별하게
하소서.
나의
마음
닿는
곳마다
오직
주만
주인되어
주시고,
걸음마다
가야
할
곳과
가지
말아야할
곳을
주의
영으로
말씀하소서.
이
땅에서
일구어낸
그
무엇이
있거든
두렵고도
떨리는
맘도
함께
주소서.
광야
홀로
아픔이
있을
때엔
어느
하나
떨어지지
않는
의미있는
눈물이게
하소서.
이
글을
쓰가는
무딘
맘의
필
끝을
주의
진리의
손으로
온전히
세워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2.
지난
날의
신앙을
돌이켜
보며
[ 구원
받지
못한
전혀
다른
영의
세계
]
( I )
열심
있는
종교행위-
예수로
옷입은
불당(佛堂)
10년전
콜로라도주
덴버에
유학왔을
때엔
예수님을
내
개인의
구세주로
영접한
일이
없었으며,
교회는
단지
마음을
닦는
신성한
수련도장으로
생각했다.(예수로
옷입은
불당)
구역예배에서
함께
통성
기도할
때엔
옆에
앉은
모
권사님의
기도하는
얼굴을
빤-히
쳐다보면서
참으로
신기해
하기도
했다.
분명
취한
것도
아니요,
주문을
외우는
것도
아닌데
저
사람
속에
도대체
무엇이
있기에
저같은
선한
마음을
쉴새없이
쏟아낼
수
있는
것일까
(방언은
아님)
나도
저같은
믿음
좀
있으면
좋겠구나하고
한편으로
부러워
하기도
했다.
인간의
선한
양심에
호소하는
행위구원에
입각한
이성적
판단으로
성경을
보았기
때문에
성경이
도무지
무슨
뜻인지
들어오지도
않았으며,
예수님의
신성
관련
부분은
모두
제외한
채
오직
인본주의적
관점에서
본
내가
만든
하나님을
섬기고
있었지만,
새벽기도도
열심히
다니면서
하늘
도를
구하려는
나름대로
진지한
노력은
분명
있었다.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은
믿음을
구하는
한
교인은
이같은
몸부림이
있는데도
단
한번도
예수님은
어떤
분이시며,왜
믿어야
되는지
영혼은
어떻게
구원
받는
것인지
조차
설교를
들어
본
일이
없었다.
이것이야말로
해괴망측한
‘체험’이요,
신종
방언이
아니고
무엇이랴.
(II)
너무도
선한
처음으로
나타나는
소위
‘신령한
체험들’-
그러나
그
마지막은
영원한
멸망으로
이끄는
너무도
위험한
사탄의
미끼
가.
하나님의(?)음성-
환청(幻聽)의
체험
예수님
없는
종교행위만
있는
상태에서,
어느
날
너무도
신령하여(?)
듣는
이가
거짓으로
꾸며낸
이야기라고
여길
정도의
신기한
영적(?)
체험을
가지게
되었는
바,.
나중에는(지금의
성경
침례
교회
섬기기
전)
모든
성경의
글자
하나
하나마다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되어
졌다는
축자영감설(逐字
靈感說)을
의심
없이
믿을
수
있는
선한(?)
계기가
되기도
했다. 다음
소개하는
신앙시가
바로
그것이며, 2001.6.12일자
한국일보에
기고하여
문학작
품의
하나로서
발표까지
하였다 (독자의
공명을
얻기
위해이
글을쓸
당시
상황을
하나도
빠짐없이
상설하겠슴)
제목:
기도
아침
햇살
받으며
초롱한
눈꽃은 /
당신의
순결한
눈빛인가요.
아늑한
산마을
아득한
저녁놀 /
당신의
포근한
가슴인가요.
고요한
밤
소리
없는
부슬비는 /
당신의
부드러운
음성인가요.
주여./
당신의
눈빛으로 /당신의
가슴으로/모두
사랑하게
하소서.
우린
모두
서로
다른
눈빛으로 /
헌한
세상
홀로 /고독한
존재이지만,
난
네가
있기에
내가
있고 /
너
또한
내가
있기에/
한
형제됨을
깨닫게
하소서.
주여./우리에게
성취보다
좌절을/행복
보단
시련을/듬뿍듬뿍
주소서.
그리하여
당신의
보이지
않는/
큰
손길
느끼게
하소서.
주여./우리를
더욱
아프게
하소서./가슴으로
애통케
하소서.
그
가운데
당신의
/ 따뜻한
영혼
느끼게
하소서.
주여./
우릴
더욱
가난하게
하소서.
어릴
적
실개천/
발가벗고
멱감던 /
가난한
소년되게
하소서.
사랑의
주님./
우린
모두
당신의/그
크신
지붕
아래
함께
어우러진/
하나됨을
깨닫게
하소서.
이
시는 2001.5월
어느
날
독주에
만취하여
간신히
귀가하였으나,
문을
열자마자
바닥에
그대로
쓰러졌다.몇
시간을
자던
중
한밤중의
몽롱한
지경에서도
얼마나
차디찬
바람이
온몸에
불어
닥치는지
당시
나는
추운
겨울
길거리에
쓰러져
그대로
동사(凍死)하는
게
아닌가
생각하고
결사적으로
몸을
간신히
일으켜
세웠으나
집안
거실임을
알게
되었다.
정신을
수습하고자
목욕까지
하였으나,
얼마나
대취하였던지
그
때까지도
취기가
가시지
않았다.
그런데,
목욕을
막
끝마치고
욕실
문을
나서는
순간
바로
내
등
뒤에서
뭔가
또렷한
음성이
들려오는
게
아닌가!!!
그것은
뜻없는
소리가
아니라
뜻이
담긴
시(詩)구절임을
직감하면서,
급히
신문지와
펜을
찾느라
허겁지겁하였고,.
실로
헐레벌떡하였으며,
안절부절
못하였다.이
시는
실로
아무런
시상(詩想)이나
시작(詩作)의
노력
없이
내
등
뒤에서
들려오는
그대로
그
소리를
따라
그냥
신문지
위에
급히
따라
옮겨
적은
것이다. 실로
받아
적느라
혼이
빠질
정도였으며,
그토록
빠르게
글을
흘겨
써
본
일은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참으로
거짓말
같이
신기하며
그
유례를
들어보지도
못한
기괴한
체험이다. (나
자신도
믿겨지지
않아
혹시
내가
이명(耳鳴)이나
잠재의식의
표출이
아닌가하고
의심했다.)
나는
지난 13년간
비록
용렬한
천작(賤作)이지만
시를
즐겨
써왔으며,
시적
영감에
사로
잡혀
있을
때엔
단번에
연달아 7수
까지
서로
다른
주제의
시를
창작한
경험도
있기
때문에
영감과
환청은
경험적으로
분명히
구별할
줄
안다.
영감이란
내
안에서
울려나오는
마음의
물결
곧
가슴
속의
소리없는
음성이다.
그러나
이
경우는
그것과
분명히
전혀
달랐다.
바로
내
등
뒤
오른쪽에서
나지막하고
또렷하게
들려오는
음성이었으며,
온
정신과
두
귀를
그
기이한
음성에
다
쏟아부었다.
급하게
따라
적느라
술기운도
화들짝
깨었으며,
마지막
절이
생각이
잘
나지
않아
“뭐라
카더라?”( “말하더라”의
경상도
사투리)라고
혼잣말로
중얼거린
것을
지금도
분명히
기억한다.
아무리
뛰어난
명문장가이라
할지라도
깨어있는
정신으로
시적
구상이
떠오르거나,
아무런
가슴
벅찬
감흥도
없는
상태에서는
아무리
시를
쓰고
싶어도
쓸
수가
없다.덧붙일
것은 그 때까지 내가 쓴 시는 대부분 수 개월에 걸쳐 수 차례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여 각고(刻苦)의
진통 끝에 시 한 수가 완성되었지 일필휘지로 단번에 쓰내려가는탁월한 감성의 명문장가도 물론 아니다.
그럼에도 이 시는 한 단어와 한 군데 문장의 배열을 바꾼것 (Paragraph 1)이외에는 토씨 하나
고친 것이 전혀 없다.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실로 기이한 체험이 아닐수 없다.
나.
[레마]의 체험
영의 눈이 문 틈새 실낱 같이 트이기 시작할 무렵4년
뒤 어느 날, 성경을 읽는
도중 글자가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면서 마치 물결 치며 가슴 안으로파고
들어오는 것 같은
환각(幻覺),이른
바
[레마](이명범
거짓 목사 주창)도
체험했다.
손에 든 성경 구절(이사야55:10)이
도저히 인간 철학으로는 쓸 수
없는 하나님의 숨결이라는 사실을 마치 돌에 얻어 맞은 듯한 가슴 벅찬 깨달음과
동시에 놀랍고도 떨리는 전율이 전신을 휩싸고 돌았다.
그리하여, 이같은 체험 이후 하루도 빠짐없이 성경을 비로소 일독(一讀)하게된
참으로 선한(?)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퇴근 후엔 그 다음에 이어지는
성경구절이 무엇인지 궁금하여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선하고도 선한 (?)
하늘
향한 열심에 불이 붙여졌다.
다.
하늘 빛 드리운 환시(幻視)의
체험
그 이튿날 아침 새벽 기도 가는 길에 내 생전 한 번도 보지 못하였고,
필설(筆舌)로도
형언(形言)하기
어려우리 만치 너무도 순결하고 참으로
아름다우며 은밀한 정적과 영원속의 하-아얀 하늘빛
드리운 것 같은 문자
그대로 천상(天上)의
가로수 잎사귀도 본환시(幻視)도
체험하였다(약 2-3초)
당시 하늘 향한 나의 발길에 비추인 하나님의 은혜의 빛일까 생각도 들었다.
3. ‘체험’이
아닌 하나님 말씀으로 구원 받은 후, 위 체험들에 대한 평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앞서 소개한 시(제목:기도)는사탄이
준 악령의 장송곡(葬送曲)이다.
인본주의 철학은 될지 모르나,
신앙시로서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망령된 거짓이었슴
을 확실하게 깨닫고 지금은 수치의 재에 앉아 통회하고 있다.
첫째,
이 글을 쓸 당시 종교적 열심만 있었지 결코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다.
둘째,
만취하여 환청의 상태에서 휘갈겨 쓴 것이지, 진실된 마음으로 하늘 나라를
간절히 구한 것도 또한 아니다.
세째,
하나님은 결코 만취하여 하나님을 구하지도 않았는데도 자비로 먼저 찾아와
(Calvinism의 누룩)함께하는 혼란의 신이 아니라,
질서와 화평의 창조주시다.
네째,
이 시 내용에 그려진 아름다운 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분명히 악령(惡靈)
이라고 지금은 단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처참한
자기비하(卑下)의
부끄럼을 무릅쓰고 이 시를 소개한 이유는
무엇보다,
이 글을 읽는 독자에게 나의 부끄러운 면을 드러내놓음으로써, 소위
[신령한
체험]이
무엇인지 그 위험성을 함께 공감하고자 함이 첫번째 이유라 할 수 있다.
분명하게
단정하지만,
이 세 가지 체험들은 비록 선한 계기로 시작은 되었으나, 마지막은
영원한 파멸로
이끄는 사탄이 던진 미끼로서
지독한 악령 체험이다.
영적 분별이
없는 경우 그 누가 이것을
선하고도 말없이 역사하시는 성령의 체험이
아니라고
생각하겠는가. 신앙 간증으로 내세운 적은 없었지만 내심으로는 나도 그런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사탄은 어느 경우나 처음에는 빛의 천사로 다가와 혼돈케한 다음
건강한
상식마저 무너뜨린 후 혼돈 속에서 결국 진리를 찾지 못하게 한다
( 곧, 영원한
지옥으로
끌고간다 )는
것을 결코 잊지 마시라!!!
왜냐하면,
하나님 말씀으로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께 돌이켜 구원받기 보다는
신령한(?)체험이
곧 하나님께 구원받은 증표라고 거짓 확신을 주어 참된 믿음
생활(종교행위가
아니다)을 헛돌게 하고 결국 온전한 구원의 확신을 갖지 못하도록
유인하는 사탄의 계략과 정확히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스스로 죄인임을 깨닫고 하나님께 돌이켜 빌지도 않았는데도,
당신을 특별히 택하시어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인가?
당신 홀로 무엇이 그토록 존귀한가? 창세 전부터 택하지
않기로 미리 예정해두신 백성은 어차피 지옥에 갈 수 밖에 없도록 만든 참 불공평하고
잔인한 인형을 섬기는 것 아닌가!!!
지나가는 소도 웃지 못할 광인 일기의 한 쪽이다.
4.사탄이
준 물탄 복음서(개역한글 성경등)와 소위 영적 해석의 허구
( I )
개역(개정) 성경등은 사탄이 준
물탄 복음서임을 알게 됨
내가 성경침례교회를 섬기기 전까지는
[
지금 이 시간 이 자리에서 당장 죽는다해도 천국간다
]는 확실한 구원의 확신이 없는 반쪽 구원에 지나지 않았다.
왠지 아시는가.
예수님이 바로 구약의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진정한 실체(신성)
를 가리운 물탄 복음서 때문이다.
그냥 예수님을 믿으라고?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어 태어난 사람의
아들이지만 하나님의 영을 온전히 입은 권능의 작은 아들 하나님이라고?
도대체 믿는 대상이 무엇인지도 정확히 모른 채 무엇을 어떻게 왜 믿는지 성경적으로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만나기
위해 몸부림치는 형제들이 참으로 안타깝다.
여태껏 거짓 목사를 신뢰하고 존경했던 나의 옛모습을 보고 실로 수치와 통분(痛憤)의
재 속에 그냥 뒹굴고 싶다.
성경에는 온전한(100%)
구원의 확신만 말씀할 뿐이다. 자기 마음 속에 ‘최소한
지옥은 가지 않겠지’하는 어정쩡한 반쪽 구원은 도무지 헛된 것으로서,
지옥에서 영원토록 고통 받는다는 것을 요한계시록 21장 8절(
죽고 난 다음 지옥 갈지, 천국에는 정말 가게 되는 것인지,
도무지 어떻게 될지 구원의 확신(100%)이 없어 두려워 하는
자)에서 생생한 언어로 증거하고 있지 않는가.
말씀보존학회에서 출간한 바른 성경
[한글
킹제임스 성경]을 받아들이면서 비로소 진정한 해답을 얻게 되었으며,
온전한 구원의 확신도 가지게 되었다.
( II )
영적으로 사적 해석을 남발하는 허무맹랑한 거짓 목사들의 위선적 농간
또한 영적 해석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헛소리인지도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하지 말라고 금한 당신의 말씀을 자식이 영적으로 해석하여 착한 의도라도 자신의 좁은 소견을 따라 행한다면 어쩌시겠는가.
이토록 유치하며 상식에도 못미치는 가슴 벅찬 헛소리 설교에 귀 기울이지 마시라.
영적(靈的)
해석은 영점(零点)
해석임을 비로소 분명히 알게 되었다.
물론 영적인 일들은 영적으로 비교하여 말해야 하지만(고전2:13),
도무지 영과 혼과 몸도 구분 못하면서 어떻게 영적 해석이 가능한지 실소(失笑)하여
목뼈가 부러질 지경이다. 차라리 철학 세미나에 참석하시라.
인본주의 철학에도 못 미치는 교회 놀이하는 거짓 목사에게 정녕 속지 마시라.
5.덧붙이는
말씀: 체험은 모두 선을 가장한 사탄의 미끼라.
만약,
지금까지 증거한 모든 말씀이 내 신앙 양심에 반하여 토씨 하나 과장이나 혹은
거짓이라도 있다면,
나는 대를 걸쳐 저주 받아 마땅하며 혹은 의도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한 획의 착오도 일체 허용되지 않음을 분명히 밝혀둔다.
또한 만약 자기가 속한 교단 교리만 듣고서 앵무새처럼 지각없고 분별력 없이
되풀이하는 것이라면,
비록 성경에 근거한 진리의 말씀이라 하더라도 내 마음에
확고부동한
100%확신 없이 뜻없이 지껄이는 말을 했다고도 일응 볼 수 있기에 이 역시
혹독한 하늘 징계를 스스로 뒤집어 쓰리라.
또한 거짓없는 이 생생한 체험 간증을 읽어면서 농담으로 가벼이 여기는 자나,
헛된
체험에서 도무지 돌이킬 생각이 없는 자나 힐난하는 자들은 정녕 화 있으리라
!!!
지금 이 순간 나는 머리에 쥐가 날 것같은 혐오감(嫌惡感)이
드는 것 같다.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결행할 당시 빛의 천사로 가장하여 자신을 재림 예수라 하며
나타난 유령을 보고 잉크병을 집어 던졌다고 한다.
참으로 감사한 일은 이 같은 선량한 체험으로 사탄의 미끼가 계속 던져졌슴에도 하등 내 믿음과 연관 지어 생각지 않았으며,
이를 개인 구원의 증표로 삼았다던가. 신앙 간증으로 내세워 신앙의 교만에
젖어 들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제는 소위
‘신령한
체험’은 모두가 다 사탄(마귀)의
최고선을 가장한 고도의 간교한
술책임을 깨닫고,
헛된 체험에 현혹(집착)되지 않고
오직 바른 성경(한글 킹 제임스
성경)의
하나님 말씀으로 온전한 구원을 얻어, 참된 믿음 생활할 수 있게된 것이 참으로
감사한 일이며,기쁘기
그지 없다. 건강한 양식의 소박한 신앙을 가지는 것이 훨씬 더
쉽지 아니한가.
당신이야말로 무엇이 그토록 특별한가. 특별하다한들 광야 홀로 존귀한
망부석이 그 무엇에 유익하리요.
당신은 분명 헛것을 보고 있다. 정녕 보이지 않는 손에 사로잡히지 마시라.
HCK
말씀보존학회 김경환 목사
전세계 그리스도인들의 최종 권위로 인정받는 킹제임스성경과 귀중한 크리스찬 서적들을 번역하여 한국민들에게
신실하게 보급하는 말씀보존학회를 거짓 비방하는 거짓 목사들과 무지한 자들에게 속지 마시고 방문하셔서 진리의 지식에
이르기를 기도 드립니다.
12235 Beach Blvd. Suite 3B, Stanton, CA 90680
Tel. 714-903-2747
Fax 714-903-2740
www.believers.net |